사이라는 유령의 정체 – 그는 정말 유령이었을까?
“시간을 건너온 집념, 혹은 바둑 그 자체”『히카루의 바둑』을 처음 본 독자라면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어? 유령이 나오는 바둑 만화야?”사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령으로 등장한다.중세 시대의 천재 기사였고, 억울하게 승부를 마치지 못한 채 그 집념을 버리지 못했다.그래서 수백 년을 떠돌다가, 우연히 히카루를 매개로 다시 바둑판 앞에 앉게 된다.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사이의 존재는 단순한 유령 이상의 무게를 띠기 시작한다.그는 단지 한 망령이 아니라, 어쩌면 바둑이라는 세계에 깃든 정신성 그 자체가 아닐까.살아 있는 자보다 생생한 유령사이는 투명하다. 히카루에게만 보이고, 만질 수도 없다.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감정이 풍부하고, 명확한 의지를 지녔다.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때로는 좌..
2025. 6. 25.
숨결 하나까지 살아 있는 감정 – 교토 애니메이션의 연출 미학
교토 애니메이션, 흔히 ‘쿄애니’라고 불리는 이 제작사는단순히 작화가 아름답다거나 배경이 정교하다는 말로는도무지 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담고 있다.그 무언가란 바로,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감정 묘사,즉 "이건 진짜야"라고 느끼게 만드는 정서의 연출이다.쿄애니의 작품을 보다 보면등장인물이 울지도 않고, 고백하지도 않고,극적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관객은 갑자기 울컥한다.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데도,오히려 그게 더 아프게 와닿는다.왜일까?말보다 시선, 대사보다 숨소리쿄애니의 감정 연출은크게 외치기보단,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누적된다.대표적인 작품인 《울려라! 유포니엄》, 《빙과》, 《바이올렛 에버가든》을 떠올려 보자.등장인물의 감정이 한순간 폭발하는 게 아니라,시선의 흔들림, 손끝의 떨림,숨을 참는 듯한 정적..
2025. 6. 22.
메인 악기도 아닌데… 왜 쿠미코는 유포니엄을 고집할까?
‘유포니엄’이라는 악기.현란한 솔로도 없고, 무대의 정중앙에 서지도 않는다.관객의 시선은 대부분 트럼펫이나 플루트 같은 높은 음색에 쏠려 있고,유포니엄은 언제나 그 뒤편, 어딘가에서 조용히 울리고 있다.그런데도 오우마에 쿠미코는 고등학교에 들어가 다시 유포니엄을 잡는다.어쩌면 억지로, 어쩌면 습관처럼. 하지만 그 선택이그녀의 성장과 맞물리며, 점차 아주 특별한 의미를 띠게 된다.이 글에서는 쿠미코가 유포니엄이라는 악기를 ‘왜’ 고집하게 되었는지,그 선택이 그녀의 감정과 인생에 어떤 방식으로 맞닿아 있는지 생각해 본다.1. 말 많은 쿠미코, 말 없는 유포니엄쿠미코는 겉으로는 무심한 척, 적당히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인다.하지만 실상은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고, 감정에 휘둘리는 타입..
2025. 6. 16.